백씨 족보

백씨 유적소재지

관악산☆ 2010. 1. 20. 17:53

 

유적소재지(遺蹟所在地)

유적(遺蹟) 성명(姓名) 호(號) 소재지(所在地)
 서봉서원(瑞峰書院) 
 백광훈(白光勳) 
옥봉(玉峰)
전남 강진
박산서원(博山書院)
백광훈(白光勳)
옥봉(玉峰)
전남 강진군 작천면 현산리
송담서원(松潭書院)
백수회(白受繪)
송담(松潭)
경남 양산군 물금면 가촌리
봉산서원(蓬山書院)
백인걸(白仁傑)
휴암(休庵)
전남 나주군 남평면 서산리
파산서원(坡山書院)
백인걸(白仁傑)
휴암(休庵)
경기도 파주
용주서원(龍洲書院)
백인걸(白仁傑)
휴암(休庵)
경기도 파주군 월롱면 덕은리
월암서원(月岩書院)
백인걸(白仁傑)
휴암(休庵)
전북 고창읍 월암리
춘강사(春岡祠)
백홍인(白弘寅)
세심당(洗心堂)
전남 보성군 태치면
옥산사(玉山祠)
백문절(白文節)
충남 보령시 남포면
난곡사(蘭谷祠)
백이정(白 正)
이재(彛齋)
경남 남해군 삼동면 난음리
도통사(道通祠)
백이정(白 正)
이재(彛齋)
충북 중원군 신니면 화안리
도통사(道通祠)
백이정(白 正)
이재(彛齋)
경남 진주
충렬사(忠烈祠)
백수회(白受繪)
송담(松潭)
경남 양산군 물금면 가촌리
기양사(岐陽祠)
백민수(白民秀)
술고당(述古堂)
전남 장흥
용현사(龍峴祠)
백광종(白光宗)
평북 의주
삼현사(三賢祠)
백시원(白時源)
노포(老圃)
평북 정주
구암사(龜巖祠)
백원의(白元義)
평북 의주
옥산사(玉山祠)
백우경(白宇經)
송계(松溪)
경북 월성군 안강읍
옥산사(玉山祠)
백우경(白宇經)
송계(松溪)
충남 보령시 남포면
옥산사(玉山祠)
백중학(白仲鶴)
충남 보령시 남포면
옥산사(玉山祠)
백광훈(白光勳)
옥봉(玉峰)
전남 해남군 옥천면 송산리
덕산사(德山詞)
백인수(白麟洙)
갑운(甲雲)
전북 고창군 성내면 덕산리
매곡사(梅谷祠)
백정기(白貞基)
전북 이리시 오현동 매곡리
신안원(新安院)
백이정(白 正)
이재(彛齋)
충남 보령시 남포면
사원(祠院)
백이정(白 正)
이재(彛齋)
충남 보령시 남포면
사원(祠院)
백이정(白 正)
이재(彛齋)
경남 진주
정려(旌閭)
백태진(白泰鎭)
충남 보령시 주산면
정려(旌閭)
백수회(白受繪)
송담(松潭)
경남 양산군 물금면 가촌리
재실(齋室)
백형기(白亨璣)
전남 장흥군 용산면 상금리
신도비(神道碑)
백인걸(白仁傑)
휴암(休庵)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
영사비(永思碑)
백인걸(白仁傑)
휴암(休庵)
전남 나주군 남평면 서산리
낙금당(樂琴堂)
백 유(白 維)
낙금당(樂琴堂)
경북 청송군 청송읍 두대동
죽림단(竹林壇)
전남 장흥군 용산면 상금리
主 祠堂(사당) :
조상의 신주(神主)를 모시는 곳으로 가묘(家廟)라고도 한다.
    書院(서원) :
조선 중기 이후 명현(名賢)을 제사하고 인재(人材)를 키우기 위해 세웠던 민간사학기관(民間私學機關)이다.
    旌閭(정문) :
국가에서 충신(忠臣), 열녀(烈女), 효자(孝子)등을 표창하고 후세들에게 길이 본이되게하기위하여 그들이 살던 고을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였다.

 

 

영월당(옥산세사 경내) 영월당 내부

 

옥산세사, 정혜사 전경 시조 송계공 묘소,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소재


역사속으로 옥산서원과 정혜사지

 

신라 선덕왕 원년(780)에 송계공(松溪公) 백우경(白宇經)이 이곳에 암자를 짓고, 만세암(萬歲庵)이라고 불렀는데, 이 후 임금이 와서보고, 정혜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경내에는 국보 제40호의 13층 정혜사 석탑이 남아있다.
역사에 기록된 바와같이 우리 시조 송계공(松溪公) 백우경(白宇經)님의 유적지라는 사실은 우리 일가 여러 어른들께서는 능히 잘알고 계시리라고 사료됩니다.
기혹 유적에 관한 소개 및 보족된 점이 있다면 리플을 달아 주시어 더욱 좋은 유적지 소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槿菴 백우현 배상 --

 

************경주 안강읍 옥산서원 과 정혜사지************


지정번호 : 사적 제154호 소재지 :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1967년 3월 8일 사적 제154호로 지정되었다.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있다.
창건된 해는 1573년(선조 6)으로 그가 세상을 뜬 지 20년이 지난 후였다. 당시 경주부윤이었던 이제민(李齊閔)은 안강 고을의 선비들과 더불어 선생의 뜻을 기리고자 독락당(獨樂堂) 아래에 사당을 세웠으며, 사액(賜額)을 요청하여 1574년에 '옥산'이라는 편액과 서책을 하사받았다.
양식은 전면에 강학처(講學處)를 두고 후면에 사당을 배치한 전형적인 서원 건축구조로 되어 있는데, 중심축을 따라서 문루·강당· 사당이 질서 있게 배치되어 소박하면서도 간결한 모습을 띠고 있다. 서향의 정문인 역락문(亦樂門)을 들어서면 무변루(無邊樓)라는 누각이 나타나고, 이어서 계단을 오르면 마당이 전개된다. 정면에는 구인당(求仁堂)이란 당호의 강당이 있고, 좌우에는 원생들의 기숙사격인 민구재(敏求齋), 암수재(闇修齋)의 동·서재실이 있다. 강당을 옆으로 돌아서서 뒤로 가면 이언적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체인묘(體仁廟)라는 사당이 나타나는데, 사당의 주변에는 장판각(藏板閣)·전사청(典祀廳)·신도비(神道碑) 등이 있다.
이 서원은 현존하는 서원 문고 가운데 많은 책들을 보관하고 있는 곳으로, 현재 두 곳에 나누어 관리하고 있다. 하나는 서원 경내에 있는 어서각(御書閣) 소장본이고, 다른 하나는 이언적의 사저에 있는 독락당에 있는 소장본이다. 보관된 책 중에서 1513년에 간행된 《정덕계유사마방목(正德癸酉司馬榜目)》은 현재까지 발견된 활자본으로는 가장 오래된 책으로 보물 제52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 밖에 《삼국사기》 《해동명적》 《이언적수필고본일괄》 등이 보물로 지정되어 고 서재인 암수재에는 총 866종 4,111권의 서적이 소장되어 있다
16세기 영남사림파의 선구가 되는 이언적을 모신 만큼 옥산서원은 조선 후기까지 영남사림의 중심지 역할을 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하였으며,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도 훼철되지 않았다. 일제 말기에 화재로 옛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곧 복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추사 김정희의 친필이랍니다 (처음에는 한석봉의 글씨였으나 화재로 중건한뒤 추사의 글씨로 바꾸었답니다)



옥산서원 : 역락문 관리자가 없어서인지 문을 굳게 잠궈 놓았군요




옥산서원은 화개산 자옥산 무학산 도덕산 등 4개의 명산이 에워싼 명당에 자리잡고 있고, 중심대 탁영대 관어대 영귀대 영심대 등 5대(臺)로 불리는 반석이 계곡을 꾸미고 있는 4산5대의 경승지다. 옥산서원 주위는 특히 늦가을 정취가 낭만적이다. 낙엽이 뒹구는 골짜기에 작은 폭포가 아기자기하게 걸려 있고, 그 위로는 통짜 외나무다리가 드리워 한층 운치를 돋운다.



태극문 : 사당 출입문 인듯 합니다.



많이 다닌흔적으로 보아 이문이 출입문인듯하나 굳게 잠궈놔서 아쉬움만


담 넘어로 찍은 비각






독락당 대문
현재 이언적의 종손 해철씨가 거주함으로 내부 사진은 못찍었고 아래사진은 두산 백과사전을 참조 했습니다



구분 : 보물 제413호 주소 : 경주군 안강읍 옥산리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1491-1553)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지은 집의 사랑채로 별장겸서재로 사용하였다.
조선 중종 11년(1516)에 건립된 이 독락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 팔작집으로온돌방(1칸×2칸)과 대청(3칸×2칸)으로 되어 있다.
독락당 앞쪽 담장 살창을 달아 대청에서 살창을 통하여 앞 냇물을 바라보게 한 것은 특출한 공간구성이며 독락당 뒤쪽의 계정 또한 자연에융합하려는 공간성을 드러내 주고 있다.













정혜사(淨惠寺) 석탑
옥산리 1654번지에는 정혜사 터가 있다. 신라 선덕왕 원년(780)에 송계공(松溪公) 백우경(白宇經)이 이곳에 암자를 짓고, 만세암(萬歲庵)이라고 불렀는데, 이 후 임금이 와서보고, 정혜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경내에는 국보 제40호의 13층 정혜사 석탑이 남아 있다. 이 석탑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를 가졌다. 전체 높이는 5.9m, 기단폭은 2m이다. 정혜사지 13층 석탑은 통일 신라시대(9C)의 탑이다. 단층 토축이며, 토대 상면에 1단의 석축이 마련되어 있고 그 위에 4매석으로 구성된 높직한 2단 방형의 괴임대가 설치되어 있다.
그 위에 13층의 탑신을 받고 있다. 탑신은 13층의 옥신 옥개석으로 건립되었는데, 특히 초층의 옥신과 옥개가 큰 규모로 조성되고 그 위의 2층부터는 아주 작아졌다. 초층 탑신은 네 귀에 방형의 석주를 우주로 세우고 우주 안으로 1석씩으로 된 석주, 인방 , 하방을 걸쳤다.


*출처: 수원백씨 중앙종친회 http://www.suwonbaek.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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