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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고려사 역대王 34명 절반 이상이 쫓겨나

관악산☆ 2009. 5. 3. 23:22

[이한우의 역사속의 WHY] 고려사 역대王 34명 절반 이상이 쫓겨나

 

입력 : 2009.05.02 03:13 / 수정 : 2009.05.02 21:23 조선일보

 

조선사 500년과 고려사 500년을 비교할 수 있는 포인트는 무궁무진하다. 그 가운데 고려 임금과 조선 임금의 파워(王權)를 비교해볼 수 있는 실마리의 하나는 강제폐위당한 임금이 몇 명이냐는 것이다. 조선은 두 차례의 정난과 반정으로 태조, 정종, 단종, 연산군, 광해군이 왕위에서 내쫓겼다. 고려의 국왕들은 어땠을까?

태조 왕건(王建) 사후 고려의 왕통은 혜종(2대) 정종(3대) 광종(4대)으로 이어지는데 모두 왕건의 아들이다. 자식이 아니라 형제가 왕통을 이었다는 것은 왕권이 불안정했다는 뜻이다. 혜종 때는 왕규(王規)가 왕의 침실까지 들어와 암살을 시도한 적도 있었다. 겁 많고 소심했던 정종도 재위 4년 만에 왕권을 친동생 광종에게 넘기고 세상을 떠난다.

4대 광종(光宗)은 26년간 재위하며 국가체제를 정비했다는 좋은 평가와 함께 말년에 너무 많은 대신을 죽여 악평(惡評)도 받고 있다. 오죽했으면 아들 경종(5대)이 왕위를 물려받았을 때 구신(舊臣)이 40명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주색잡기에 빠져 지내던 경종이 26살에 세상을 떠나자 왕위는 경종과 사촌인 성종(成宗)이 계승했다. 경종의 아들(훗날의 7대 임금 목종)이 두 살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폐위군주 1·2호는 목종·헌종

성종은 16년 재위하며 종묘사직을 바로잡았다는 평가를 들을 만큼 명군(明君)에 속한다. 왕위는 다시 경종의 아들 목종이 잇는데 그 모후가 천추태후(千秋太后)다. 천추태후와 김치양이 추문을 빚어내고 국정이 혼란에 빠지자 목종 12년(1009년) 강조(康兆)가 난을 일으켜 목종 모자(母子)를 내쫓았다. 강조는 사람을 보내 충주로 방출돼 가던 목종을 경기도 북부 적성 인근에서 살해했다. '제1호 폐위군주'의 비참한 최후였다.

왕위는 성종과 사촌인 현종(제8대)이 잇는다. 현종 때는 거란의 침입을 받아 국토가 유린되고 현종 자신이 전라도 나주까지 몽진을 가는 수모를 당하기는 했지만 선정을 펼쳐 이후 고려 태평성세의 기초를 놓았다는 평이 있다. 이후 왕위는 현종의 세 아들인 덕종(德宗·9대) 정종(靖宗·10대) 문종(文宗·11대)으로 이어진다. 37년간 재위했던 문종 때를 태평성세라고 한다.

문종 사후 장남이 왕위에 오르는데 두달여 만에 세상을 떠난 순종(順宗·12대)이 그다. 이어 유언대로 친동생 선종(宣宗·13대)이 즉위하여 11년간 재위하고 아들 헌종(獻宗·14대)에게 왕위를 넘기지만 곧 헌종의 작은 아버지 계림공 왕희가 헌종을 강제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른다. 그가 15대 고려 국왕 숙종(肅宗)이다. '제2호 폐위군주' 헌종은 14살의 나이로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황음 일삼던 의종, 이의민이 살해

숙종이 안정적 통치의 기반을 다지고 왕위도 숙종의 맏아들 예종(睿宗·16대), 예종의 맏아들 인종(仁宗·17대)으로 이어지면서 왕권은 안정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미 문종 때부터 시작된 이자겸 집안과의 혼맥으로 인해 왕실은 무너지고 있었다. 예종의 태후가 이자겸의 둘째딸, 인종의 후비가 이자겸의 셋째딸과 넷째딸이었다. 이자겸의 난, 묘청의 난, 무신란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인종 사후 왕위는 의종(毅宗·18대)이 이었다. 온갖 황음(荒淫)을 일삼던 의종은 결국 의종 24년(1170년) 정중부 등에 의해 거제도로 유배를 가야 했다. '제3호 폐위군주' 의종은 결국 경주에 안치되었다가 3년 후 이의민의 손에 살해된다.

의종을 내쫓은 무신세력은 의종의 친동생 명종(明宗)을 19대 왕으로 추대했다. '허수아비' 임금 명종은 최충헌 형제의 눈밖에 나는 바람에 1197년(명종 27년) 왕위를 내놓아야 했다. 창락궁에서 유폐생활을 하던 '제4호 폐위군주' 명종은 5년 후 7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나마 천수(天壽)는 누렸다.

24~30代는 모두 몽골이 거취 정해

명종의 친동생 신종(神宗)이 20대 왕으로 오르지만 재위 7년 만인 1204년 최충헌 세력의 '압력'으로 아들 희종(熙宗·21대)에게 선위(禪位)한다. '제5호 폐위(선위)군주' 신종은 그렇게 물러났다.

그런데 희종이 뜻밖의 일을 도모한다. 재위 7년째인 1211년 12월 허수아비인 줄 알았던 희종이 최충헌을 죽이려다 실패해 폐위당하고 강화도로 쫓겨난 것이다. '제6호 폐위군주' 희종은 천수를 누리다 1237년 세상을 떠난다.

희종을 내쫓은 최충헌은 명종을 폐위시킬 때 강화도로 보냈던 명종의 태자를 불러 희종의 뒤를 잇게 한다. 강종(康宗·22대)이다. 왕위에 오를 때 이미 60세였던 그는 2년 만에 죽고 맏아들 고종(高宗·23대)이 왕위에 오른다. 46년을 재위하며 마침내 무신정권의 종말을 보지만 몽골이 쳐들어오고 있었다.

이때부터 원종(元宗·24대)을 거쳐 25대 충렬왕, 26대 충선왕, 27대 충숙왕, 28대 충혜왕, 29대 충목왕, 30대 충정왕까지는 즉위와 폐위 모두 몽골이 결정했다. 31대 공민왕부터 32대 우왕, 33대 창왕, 34대 공양왕은 모두 자기 신하들에게 죽거나 쫓겨났다. 결국 절반 이상이 자기 뜻과 관계없이 왕위에 오르고 쫓겨났던 게 고려의 국왕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