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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 사랑]성묘(省墓)의 유래

관악산☆ 2008. 9. 12. 22:38

[이덕일 사랑] 성묘(省墓)의 유래

이덕일·역사평론가 newhis19@hanmail.net

 

 

성호(星湖) 이익(李瀷)은 '설날과 추석'이란 글에서, "우리나라 민간 절기〔俗節〕에 8월 15일에 성묘하는 것을 추석이라고 한다"고 추석을 민간 풍습이라고 말했다. 순암 안정복(安鼎福)이 '안정진(安正進)의 질문에 답하는 글'에서 3월 상순의 벌초는 당(唐)나라 '개원례(開元禮)'에서 비롯되었지만 한식(寒食)에 묘소에 참배하고 추석에 벌초하는 것은 '중국의 예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於禮無見〕'고 말한 것처럼 추석 성묘는 중국에는 없던 우리만의 풍속이었다.

인조반정 이후 사대주의가 기승을 부리면서 일부 사대부들 사이에서 추석 성묘를 거부하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도 중국에는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이 인조 27년(1649) '송영보(宋英甫:송시열)에게 답하며 송명보(宋明甫:송준길)에게도 함께 보이다'라는 글에서 "추석 때의 묘제(墓祭:성묘)는 내 집에서는 아이들에게 설행(設行)하지 말도록 명했고, 가묘(家廟)에만 약간의 주과(酒果)를 올리도록 시켰다"라고 말한 것이 이런 사례다. 이를 고민한 순암 안정복은 중국과 조선의 풍속을 배합해 새 기준을 만들었다. 양(陽)의 기운이 생겨나는 동지(冬至)와 음(陰)의 기운이 생겨나는 하지(夏至)에는 가묘에 제물(祭物)을 올리고, 풀이 자라는 한식과 곡식이 익는 추석에는 무덤에 전(奠)을 올린다는 것이다. 그는 영조 33년(1757) 설날 '제례(祭禮)를 고하는 글(告辭)'을 지어 조상들께 이를 고유(告由)했다.

안정복은 추석 성묘는 가야의 수로왕에서부터 시작된 동방의 풍속〔東俗〕이라고 보았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매년 정월 3일·7일과 5월 5일, 8월 5일과 15일(추석)에 풍성하고 정결한 제전(祭奠)으로 제사지냈는데, 대대로 이어져 끊어지지 않았다"라고 적고 있다. '삼국유사'는 가야가 망한 후 영규(英規)라는 자가 음사(陰祀:제사를 지내서는 안 되는 자가 드리는 제사)를 행하다가 사당의 대들보에 깔려 죽자 그 상관 충지(忠至)가 수로왕의 직계 규림(圭林)에게 제사를 모시도록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추석 성묘는 우리 민족의 효심(孝心)이 만든 독특한 풍습이다.

 

입력 : 2008.09.11 2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