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씨의 원계
| ||
우리 백씨는 모두가 시조 송계공(松溪公)의 후손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니 송계공부터 계세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앞의 [계세와 중시조]에서 규명한 것처럼 연계하는 데 여러 가지 모순과 무리가 따른다. | ||
白宇經(백우경) |
字는 경천(擎天)이요 號는 송계(松溪)인데 唐나라 소주(蘇州)사람이다. | |
|
벼슬은 삼중대광 우간의대부(三重大匡右諫議大夫)로 참소를 받아 대우도(大牛島)에 귀양갔다가 이듬해 봉화현(現慶北奉化)에 옮기시어 2년뒤에 풀려났으나 다시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다고 한다. 묘는 송계공 묘아래 자좌(子坐)라고 하나 찾지 못하여 영월당 경내에 사공단비(四公壇碑)를 세워 공이하 4대를 합사(合祀)하고 있다. | |
|
字는 자평(子平)이요 벼슬은 광록대부(光祿大夫)로 中國에 건너가 서주대도독(徐州大都督)을 지내다 신라로 돌아왔다고 한다. 또는 애장왕(哀莊王)때 각간시중(角干侍中) 벼슬로서 당나라 임금의 부름을 받고 가서 자광록대부(金紫光綠大夫) 서주도독대윤(徐州都督大尹)을 제수하고 9년만에 돌아왔다고도 한다. 묘는 송계공 묘 아래 좌강외 임좌(左岡外壬坐)라고 한다. | |
|
字는 여화(汝和)이며 한주태수(漢州太守)를 지냈다. 묘는 송계공 묘 아래 좌강외 임좌라고 한다. | |
|
字는 구지(久之)이며 시호(諡號)는 문원(文元)이다. 신라 헌덕왕 丙午년(서기826년)에 우잠태수(우잠은 현 황해도 금천군)가 되자 한산이북(漢山以北) 주민들 일만명을 동원하여 패강장성(패강은 현 대동강) 300리를 구축했다고 한다. 이 사실은 삼국사와 대구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경주읍지(慶州邑誌) 제2권에 기록되어 있다. 한편 당나라에 가서 첨의사를 지내고 4년 뒤에 돌아와 우잠태수가 되었다고도 전한다. 묘는 송계공 묘 옆에 있다고 한다. | |
|
字는 덕이(德而)이고 시호(諡號)는 충정(忠正)이며 벼슬은 어사대부(御史大夫)다. 中國에 가서 대양도독(大梁都督)을 지내고 돌아왔다고 한다. 묘는 하양현(지금 경산군 하양읍)에 있다고 한다. | |
|
字는 운로(雲路)요 시호는 익열(翼烈)이다. 벼슬은 헌안왕(憲安王)때 삼중대광 좌간의대부(三重大匡左諫議大夫)에 올랐는데 그 사적(事蹟)이 여지승람(與地勝覽) 남포인물론(藍浦人物論)에 실려 있다. 묘는 남포현 쌍계산에 있다고 하나 실전(失傳)이다. 또는 남포현 계림산임좌에 있다고도 하고 영풍현(지금의 경북 영풍군)에 있다고도 한다. | |
|
헌강왕(憲康王)때 이부시랑(吏部侍郞) 벼슬을 지냈다고 한다. 또 문하시중(門下侍中) 상서시랑(尙書侍郞) 평장사(平章事)에 올랐다고도 하며 개주(지금의 개성)에 살았다고 한다. | |
|
호는 연정(烟亭)이요 시호는 소장(昭章)이며 벼슬은 광록대부 문하시중 정당문학평장사(光祿大夫門下侍中政堂文學平章事)다. 그의 문장(文章)과 덕행(德行)이 뛰어나 그 때 사람들이 옛날의 이윤(伊尹)과 여상(呂商)의 반열(斑列)이요 소하(蕭何)와 조삼(曺參)의 여주(與주)라고 칭송하였다고 한다. 고운최치원(孤雲崔致遠)선생이 찬명(撰銘)하고 묘는 남포현 양각산 동막동 갑좌인데 중세(中世)에 실전되었다가 영조 경신년 여름(서기 1740년)에 후손 시규(時糾)가 지석(誌石)을 찾아 개봉(改封)하고 매년 양력 10월 마지막 일요일에 향사(享祀)하고 있다. | |
|
자는 은삼(殷三)이요 호는 관죽당(觀竹堂)이며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어제(御製)에 말씀하시기를 公은 孔子를 배우고 안자(顔子)를 사모(思慕)하여 정도(正道)에 변함이 없었다한다. 벼슬은 광록대부 정당문학 태자태부 평장사(光祿大夫 政堂文學 太子太傳 平章事)다. | |
|
호는 고와(孤窩)요 시호는 경열(敬烈)이다. 벼슬은 광록대부 중서성상장군(光綠大夫 中書省上將軍)이며 고운 최치원선생(孤雲 崔致遠先生)이 전서(篆書)한 찬지(撰誌)가 있다한다. | |
|
자는 내연(乃淵)이요 벼슬은 광록대부 문하성사(光綠大夫 門下省事) 또는 문하시중 대사도(門下侍中 大司徒)라고도 한다. | |
|
중국에 가서 국자진사(國子進士) 벼슬을 지냈다고 한다. 배(配)는 김씨인데 원외랑 김성한의 딸이다. | |
|
호는 담재(澹齎)인데 중국에 가서 국자생원(國子生員) 벼슬을 지냈다고 한다. 배(配)는 배씨인데 한림학사 배천서의 딸이라고 한다. 또 이씨라는 설도 있다. 아우는 홍걸(弘傑)인데 광록대부 정당문학 평장사 벼슬을 지냈다. 홍걸의 배(配)는 최씨인데 좌복야 최등완의 딸이다. | |
|
중시조(中始祖)다. 백씨는 중시조를 1세(世)로 하여 계세하고 있다. |
*출처: 수원백씨 중앙종친회 http://www.suwonbaek.org/